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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 낙관론_신의 개념과 최선의 세계

by 잡다정보 2025. 1. 30.

결국 서양에서 신은 데카르트가 그랬듯 철학을 정초짓는 그런 개념이었다.

신의 개념

 

서양철학은 제1 원인이나 신의 개념을 통해 세계관을 확립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현대는 일견 그런 전통을 무시하거나 비판하는 움직임이 대세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중심 개념들이 제1원인을 대체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의지도 사실은 신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의지에 자기 존재의 근원이 있는 인간은 현상으로 실추되었다가 다시 의지로 회귀할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저명한 동서 비교철학자인 프랑수아 줄리앙의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의 머리말에서 번역자는 서양철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한다.


“서양 철학서들을 읽다 보면 예외 없이 등장하는 개념이 신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도 하이데거의 ‘존재’도 레비나스의 ‘타자’도 모두 신개념의 모작에 불과하다. 결국 서양에서 신은 데카르트가 그랬듯 철학을 정초짓는 그런 개념이었다.”


서양의 대표적인 전통 철학자 중 한 명인 라이프니츠는 현대철학자들과 달리 신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다루지 않고 주저 없이 자기 사상 전체의 주인공으로 신을 내세운다. 법률가였던 그는 신의 변호인 역할을 자처하기까지 한다. 신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풍부한 논변을 제공하는 철학자로서 라이프니츠를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는 고중세의 사상과 근대과학의 탄탄한 토대 위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신의 존재와 능력을 맹신하는 고루한 신학자의 고집과는 거리가 멀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신, 물질, 몸, 정신, 과학, 상상, 지각, 자유 등의 개별적인 문제를 논의하려면 그의 체계 전체를 고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서 출발하더라도 나머지 문제들을 만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철학 체계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다고 평가된다. 라이프니츠가 사물의 궁극적 요소로서 정의한 모나드(정신적 실체)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신의 개념에 접근하는 것은 라이프니츠의 체계를 이해하는 유용한 방식 중 하나다.

 

모나드


모나드는 라이프니츠가 고대 그리스어의 Monas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용어다. 모나드는 ‘단순한 것’이라는 의미로서 사물의 궁극적 요소다. 즉 복합적인 존재들의 배후에 배치된 단순한 요소들이 모나드다. 그런데 단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순하다는 것은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복합적인 것(composed)은 부분들로 구성된 것이다. 부분들이 있는 것은 복잡한 것, 복합적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은 복합적이다. 책상, 의자, 컴퓨터, 커피 등등은 모두 복합체들이다. 우리의 몸 또한 복합체다. 생성과 소멸, 탄생과 죽음도 복합체의 변화과정이다.


무엇이 탄생한다는 것은 부분들의 증가에 의한 것이다. 사람의 경우, 정자가 난자에 착상되어 세포들이 늘어나고 분화되어 여러 기관이 형성된다. 그 후에도 몸은 양분 섭취를 통해 다른 부분들을 동화시킴으로써 재생되고 성장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거꾸로 부분들이 감소하는 것이다. 몸이 부패하고 해체되는 것은 부분들이 감소해 가는 과정이다. 자연의 모든 복합체는 부분들의 증감에 의한 변화를 겪는다. 자연의 변화는 항상 점진적이다.


부분들의 증감으로 생성과 소멸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라이프니츠의 관점은 동양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장자(莊子)는 생멸(生滅)을 기(氣)의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본다. 유교에서도 생과 사를 혼백(魂魄)의 조합과 분리로 본다. 생은 혼과 백이 합쳐 있는 상태이고 죽음은 혼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비가시적인 것, 양陽)로 백은 땅(가시적인 것, 음陰)으로 흩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혼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흩어지는 기간 동안 제사를 지내는 것이며, 향을 피우는 것은 혼을 달래고 술을 땅에 뿌리는 것은 백을 달래는 상징으로서 이해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음양의 조화를 넘어선 초자연적 존재, 즉 신을 상정한다. 이 점에서 그는 서양철학의 위대한 대변자다.


신의 개념은 모나드의 단순성과 관련이 있다. 모나드는 단순하기 때문에 부분이 없다. 따라서 점진적인 증감의 주체도 대상도 아니다. 모나드는 “한 방”(d'un coup)에 생겨나고 없어질 뿐이다. 모나드는 자연적 작용에 의해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나드는 창조되거나 무화(無化)될 뿐이다. 창조와 무화의 주체는 신이다. 자연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인 신이 만물의 제1 원인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어떤 존재인가? 라이프니츠는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전에 신의 개념이 가능한지, 즉 모순이 없는지 묻는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수용되는 신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대다수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신을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로 정의한다. 신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은 가능한 모든 완전성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완전성을 최상의 등급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성은 최종 등급의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 신에게 속한 각각의 완전성들은 최종 등급이기 때문에 서로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완전성은 제한이 없고 무한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충돌이 없다. 신의 개념은 그 자체로 모순되는 요인을 내포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최종 등급을 가질 수 없는 본성의 것은 완전성이 아니다. 수와 도형의 예를 들어보자. 수와 도형에 최상의 등급을 설정할 때, 즉 가장 큰 수나 가장 큰 도형을 구상할 때 우리는 곧바로 모순에 빠진다. 가장 큰 수보다 더 큰 수, 가장 큰 도형보다 더 큰 도형, 가장 빠른 운동보다 더 빠른 운동을 생각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물질적인 것은 완전성일 수 없다. 이 점에서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와 차이를 보인다. 나중에 스피노자를 다루면서 살펴보겠지만, 스피노자는 신에게 속한 완전성들 가운데 물질을 포함한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입장을 따르는 현대의 유물론자들도 상당히 많다. 반면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항상 더 큰 공간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간은 상대적인 것이고 제약이 가능하다. 이와 반대로 앎과 능력은 최종 등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완전성이다. 가장 큰 지혜 또는 지식, 그리고 가장 큰 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신에게 속한 앎과 능력은 전지와 전능으로서 아무 한계도 없다.

 

출처: 이근세, 『철학의 물음들』, Big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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