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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 비관론_비관론의 윤리

by 잡다정보 2025. 1. 30.

인간은 의지의 존재다.

인간의 의지

 

인간은 의지의 존재다. 그런데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의지를 온전히 발현하는 것이다. 의지의 대상화 또는 객관화가 곧 의지의 목적이다. 달리 말하면, 의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거울로서의 이 가시적 세계다. 의지가 삶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 의지의 대상화다. 사실 의지 행위를 쉬지 않고 지속하는 의지의 차원에서 볼 때 삶은 아무 문제도 없다. 물자체로서의 의지는 충족이유율의 모든 형식과 전적으로 무관하며, 따라서 절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의지는 물자체이고, 세계의 내적 실질이며, 본질적이지만, 생, 가시적 세계, 현상은 의지의 거울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치 육체에 그림자가 따르는 것처럼, 의지에는 생, 세계, 현상이 불가분으로 수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가 있는 곳에는 또한 생과 세계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에의 의지에는 생은 확실한 것이며, 우리들이 이생에의 의지로 충만되어 있는 한, 아무리 죽음을 직면하더라도 우리들은 우리의 생존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343쪽)


그러나 의지의 대상화는 의지를 온전히 반영하는가? 인간의 본질은 의지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인간의 의지는 육체로 개체화된다. 개체화된 육체의 존재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존을 위한 중단 없는 본능적 노력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또 다른 존재 방식인 표상의 무수한 양상들은 생존을 위한 구체적인 동기들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는 인간에게 부분적이고 상대적인 규정들만을 제공하지만, 그것들을 욕망의 지표로 삼아 계속하여 무한정한 생존 욕구를 작동시킬 수밖에 없다. 삶의 모든 요소는 자신의 생존, 그리고 번식을 위한 성욕에 불과하다.


“인간은 철저하게 구체화된 의욕과 욕망이며, 무수한 욕망의 덩어리이다. 인간은, 이 욕망을 품고 자신의 결핍과 필요를 제외한 불확실한 모든 것들을 단념한 채 이 지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매일 새로이 나오는 번거로운 요구들에 괴로움을 당하면서, 이 생존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신경 쓰는 것이 인생의 전부이다. 다음으로 이 생존의 유지와 직접 맺어지는 제2의 요구는 종종 번식의 요구이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384~385쪽)


인간은 생존을 위해 먹고 자고, 생존을 연장하기 위해 종족을 번식하려는 욕망의 존재다. 그런데 생존을 위한 밥벌이, 번식과 관련한 사랑, 성(性), 자녀 등을 위해 쏟아붓는 노력의 치열함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의지와 개체의 불균형 때문이다.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무한한 의지를 담기에 인간의 개별적 육체는 “너무나 작고 연약한 그릇”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격렬할 수밖에 없고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사랑

 

사랑도 실은 동화 속의 환상처럼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는 성욕이라는 본능에 근거한 것이다. “즉 남녀의 사랑은 이 본능이 특수화되고 한정되고 개체화된 것이다.”(인생론, 82쪽) 아무리 애정을 상대방에 대한 찬미라거나 이지적인 훌륭한 것이라고 치장하더라도, 사랑은 육체관계를 향하고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해 순수한 정신적 관계였다고 위로를 하는 것도 다 육체관계의 아쉬움이 무의식적으로 전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교는 단지 감각적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번식을 위한 것이다. 만일 성교가 음락(淫樂)을 위한 것뿐이라면 상대방의 미추를 고려하는 태도는 하나의 불가사의가 된다. 감각적 쾌락은 미끼일 뿐이다. 성교의 진정한 목적은 종족의 보존이다. 종족 보존의 목적에 대한 고려 없이는 정열적인 사랑, 사랑을 위한 희생, 사랑으로 인한 비탄, 변절과 배반 등, 사랑으로 인해 생겨나는 심각한 인간사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애정사가 장구한 역사를 통해 언제나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오는 것도, 연인들이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도, 사랑으로 인해 수많은 중대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모두 종족보존, 더 나아가 나와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통해 종족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모든 이에게 보편적이고 근본적 욕구로서 무의식적으로나마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개체들의 모든 활동은 “종족의 혼령”(인생론, 60쪽)의 수족일 뿐이다.


사랑이 종족 보존을 위해 탈을 쓴 본능이라는 사실은 이성의 선택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들을 보면 잘 드러난다. 우선 남자가 이성을 택할 때 젊은 여자를 선호하는 것은 생식과 수태에 적합한 시기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기 때문이다. 건강과 골격은 물론 이빨의 미추도 고려하는데 이는 “음식 영양과 관계가 있고 유전되기도 쉽기 때문이다.”(인생론, 63쪽) 또한 풍성한 머리칼은 체내의 식물성 기능의 원활한 작용을 표현하므로 역시 태아의 영양 섭취와 관계를 갖는다. 지나치게 마른 여자가 성적 매력이 없어 보이는 것도 역시 무의식적으로 태아의 영양이 고려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뚱뚱한 여자는 병적 상태와 자궁의 위축으로 인한 임신 불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혐오감을 주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요구하는 특징은 역시 체력과 용기다. “이것은 건강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증거가 되며 앞날의 용감한 보호자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인생론, 64-5쪽) 여성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남성적인 골격 구조, 넓은 어깨, 근육의 힘 등이 그 표지다. 남녀의 타고난 특징들 때문에, 지극히 다른 성향을 가진 남녀가 서로를 배우자로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서로를 보완하려는 남녀의 욕구가 종족 보존의 파생적 형태, 즉 개체적 조건을 구성한다. 개체를 목표로 하는 사랑은 애인들의 기형적 결함을 서로 보충하여 훌륭한 종족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정열적 사랑의 조건이다. “누구나 자기와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이성을 좋아하며 그 구애의 열의는 자기가 가진 성격의 강도에 비례한다.”(인생론, 68쪽) 상호보완성이 완벽할 정도로 강할 경우 사랑은 초인간적이고 고귀한 사랑이 된다.

출처: 이근세, 『철학의 물음들』, Big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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